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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대표소주’ 안동소주

chihoon, An. (A.K.A 슈퍼스타) x2chi 2007.11.24 12:17
대한민국 대표소주’ 안동소주


화끈하게 취하고 깨끗하게 끝난다. ‘안동소주’가 애주가들의 사랑을 받으며 우리나라 ‘대표 소주’로 불리는 까닭이다. 시인 유안진은 “사나이의 눈물 같은, 피붙이의 통증 같은, 첫사랑의 격정 같은 내 고향의 약술”이라고 노래했다. 목구멍을 타고 넘어갈 때 화끈거리는 불의 힘이 느껴지는 45도 화주(火酒). 이 고장 시인 안상학의 구수한 술타령처럼 “뒤란 구석진 곳에 소주고리 엎어놓고 장작불로 짜낸 홧홧한 안동소주”에는 “취한 두어 시간 잠에서 깨어나 머리 한번 흔들고 짚세기 고쳐 매고 길 떠나는 등짐장수”와 같은 우리네 모습과 정서가 배어있다.


#안동소주, 우리나라 소주의 역사


우리나라에 증류주인 소주가 전해진 시기는 쿠빌라이가 고려를 침략한 13세기로 전해진다. 몽골은 칭기즈칸이 세계를 정복하는 과정에서 아랍의 알코올 증류법을 배워 소주를 만들었다. 우리나라에는 일본 정벌을 위한 몽골의 전진기지가 있던 개성과 안동, 제주를 중심으로 전파됐다는 설이 보편적이다. 칭기즈칸 후예의 약탈 상흔과 함께 남은 증류주 문화가 재탄생한 것이 안동소주인 셈이다.


문헌상으로는 ‘고려사’에 김진(金眞)이란 무장이 임지인 경북 북부지방에서 소주 먹기를 즐겨하여 소주도(燒酒徒)라는 별명을 얻었다는 기록이 있다. 이수광의 ‘지봉유설’에는 사대부들이 호사스러워져서 소주를 많이 마셔 취해야만 그만뒀다는 등의 내용이 눈에 띈다. 이같은 기록 등으로 미뤄 권문세가에서 소주를 빚어 마시거나 약으로 이용되다 일반 백성에게 보급된 것으로 보인다.


#일본·만주까지 명성 ‘명품소주’


안동소주는 안동지방 명문가에서 가양주로 전승돼왔다. 처음으로 대량 생산된 것은 1920년대 참사를 지낸 권태연이 안동시 남문동에 공장을 세우고 상품화한 ‘제비원 소주’다. 전통 누룩대신 배양균을 이식하는 일본식 흑국을 사용한 개량된 방식으로 생산, 일본과 만주에까지 판매되면서 명성을 떨쳤다. 64년 정부의 양곡정책에 따라 쌀을 원료로 사용하는 것이 금지되면서 개량된 방식으로 생산되던 소주마저 생산이 중단됐다. 일제 강점기와 주세법 개정으로 안동소주의 전승이 위태로웠지만 민간에서는 몰래 만들어 마시며 맥을 이어왔다. 그러던 중 87년 안동소주 제조 비법이 경상북도 무형문화재 제12호로 지정되고 조옥화씨(83)가 기능보유자로 인정돼 90년 민속주로 생산과 판매가 이뤄지면서 ‘대한민국 대표 소주’로 부활했다.


#밤이슬이 만들어 그윽하구나


안동소주를 만드는 재료는 깨끗한 물과 누룩을 만드는 밀, 고두밥을 만드는 멥쌀이 전부다. 다른 첨가물은 전혀 없다. 누룩은 통밀을 씻어 말린 다음 적당히 바수어 물을 섞어 버무리면서 꼭꼭 뭉쳐 누룩틀에 넣어 만든다. 20일 정도 띄운 다음 콩알 정도의 크기로 부숴 널어놓고 밤이슬을 맞힌다. 멥쌀로 고두밥을 쪄 그늘에 멍석을 깔고 넓게 펴서 식힌 다음 깨끗한 물을 부어가며 고두밥과 누룩을 손으로 버무려 술독에 넣어두고 15일 정도 숙성시키면 노르끄레하면서도 감칠맛나는, 증류하기 이전 단계인 전술이 된다. 발효된 전술을 솥에 넣고 소주고리와 냉각기를 솥 위에 얹은 뒤 불을 지펴서 열을 가하면 전술이 증발하면서 냉각기에 닿아 액체로 변해 소주 고리관을 타고 떨어진다. 처음에는 70~80도의 높은 도수의 소주가 흘러나오다 점점 도수가 낮아지는데 45도가 됐을 때 증류를 멈추면 맛과 향이 뛰어난 안동소주가 된다.


#빨리 취하고 빨리 깨고 뒤끝 없고 ‘싸나이 술’


안동소주는 도수가 높은 만큼 빨리 취하고 빨리 깬다. 우리나라 사람들의 체질이 쌀로 다져졌기 때문에 쌀과 밀 등 순곡으로 만들어진 안동소주의 위 흡수력이 빨라 빨리 취하고 몸에 부담도 덜 준다고 안동 사람들은 입을 모은다. 도수가 높기 때문에 안주로는 육류 등 기름진 것이 좋다. 안동 특유의 음식인 가오리찜과 삶은 문어, 상어전, 고기를 넣은 파산적이 안주로 제격이다. 안동 사람들은 곧잘 ‘쌀과 보리의 만남’이라며 안동소주와 맥주를 섞어 마시기도 한다. ‘안동소주 폭탄주’인 셈이다. 애주가인 김휘동 안동시장(61)은 “안동소주에 맥주를 섞어 마시면 양주를 섞을 때와 달리 거품도 안 생겨 깨끗하게 마신 뒤 깨끗하게 깬다”며 “안동소주야말로 뒤끝없는 사나이의 술”이라고 말했다.


〈안동|글 최슬기기자 skchoi@kyunghyang.com〉


〈사진 정지윤기자 color@kyunghyang.com〉





[전통주 기행]“영국여왕도 내 손맛에 반했죠”


경북 안동시에서 안동소주를 제조하는 곳 가운데 가장 전통적인 방식으로 만드는 제조장은 조옥화씨의 ‘민속주 안동소주’다. 조씨는 한동안 맥이 끊긴 안동소주를 민속주로 살려낸 주인공이다. 각종 여성단체에서 활동하던 조씨에게 1988년 서울올림픽을 앞두고 안동시 공무원이 동동주를 안동의 전통주로 개발할 것을 권유했다. 그러나 조씨는 안동을 대표하는 술은 안동소주라며 이를 민속주로 되살릴 것을 제안했다. 조씨는 친정에서 배운 가양법과 시집의 가양법 가운데 장점만을 골라 전통적인 방식으로 안동소주를 재현했다.


이어 90년 안동소주 제조 면허를 받아 생산, 판매에 나섰으나 마을 아주머니들을 데리고 전통적인 도구를 사용해 만든 것이어서 생산량이 제한적일 수밖에 없었다 이 때문에 안동소주 한 병을 사기 위해 새벽부터 줄을 서서 기다리는 진풍경이 벌어지기도 했다. 94년 대량 생산이 가능한 지금의 제조장을 지어 현재 연간 18만여병을 생산하고 있다.


96년에는 제조장 내 110여평에 ‘안동소주·전통음식박물관’을 세워 안동소주와 전통음식 보존·전승에도 힘쓰고 있다. 조씨는 99년 엘리자베스 2세 영국 여왕이 안동을 방문했을 때 여왕의 생일상을 차린, 안동지역 전통음식 분야의 상징적인 존재이기도 하다.


안동소주를 빚는 비법은 며느리 배경화씨(53)에게 전수돼 배씨는 기능보유자 후보가 됐다. 여든이 넘은 나이에도 1주일에 3~4일은 전통요리 강습을 할 정도로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는 조씨는 “전술을 증류할 때 불의 세기를 잘 조절하는 것이 비법”이라고 말했다. 처음에는 불을 세게 때다가 증류가 시작되면 불을 낮춰야 한다는 것이다. 며느리 배씨도 “불을 잘 조절해야 누룩냄새인 화근내가 적당하게 나면서 술맛이 좋아진다”고 거들었다.


〈안동|최슬기기자〉





[전통주 기행]‘안동소주의 시인’‘진짜 안동소주’를 말하다


나는 안동사람이다. 어딜 가나 안동 사투리를 툭툭 던지는 영락없는 안동 촌놈이다. 내가 자주 어울리는 글쟁이 판이라도 별 수 없다. 말끝마다 껴, 껴 하는 덕에 안동껑껑이는 별호가 되고 말았다.


한 술 더 떠서 두번째 시집 제목까지도 안동 냄새가 흥건하다. ‘안동소주’라니. 아니라도 안동, 안동 하는 판에 아예 소주 냄새를 뒤집어썼다. 그것도 40도를 웃도는 독주에 누룩냄새까지 곁들였으니 오죽하랴. 독하다.


아닌 게 아니라 나에게서 안동 냄새가 어떻게나 났으면 그 시집을 낸 출판사 사장인 김영현 소설가가 제목을 그렇게 지었겠는가. 그 후, 글판에서 알 만한 사람들이 나를 소개할 때 “‘안동소주’의 시인 안 아무갭니다”가 자주 등장하는 레퍼토리가 되었다. 세번째 시집을 낸 지 벌써 이태가 되어가건만 아직도 그 타령이니 한심하다는 생각도 든다. 안동소주가 그 만큼 강력한가. 그 만큼 인상적인가.


내가 아직 ‘안동소주’의 시인으로 통하는 데는 시의 문제가 아니라 순전히 진짜 소주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그렇다고 강렬한 자극을 안겨주는 목넘김에 중후한 향기, 남성적이고 진중한 취기에 길들여진 그들의 애주 편력을 탓할 생각은 추호도 없다. 나 또한 애주가로서 그 만한 닉네임 정도는 풍류로 받아들일 품은 비록 밴댕이젓 담은 속이지만 있다.


안동소주의 그 미끈한 호리병을 볼 때마다 나는 주막을 떠올린다. 치맛자락을 걷어 올려 묶은 주모가 있는 곳이라면 들마루면 어떻고 멍석자리면 또 어떠랴. 개다리소반에 묵 한 사발, 그 호리낭창한 소주병을 기울이고 싶다. 까무룩 취해도 두어 시간만 자고 나면 언제 술 먹었냐는 듯 깨끗한 뒷맛에 해장국 대신 다시 술잔을 찾더라도 무진장주에 들고 싶다.


한 20년 전에만 해도 안동소주를 구하기가 하늘에 별 따기였다. 명절이면 술도가 앞에 새벽같이 가서 한나절 줄을 서야 한두 병 얻어걸리던 술, 그래서 아껴 먹을 수밖에 없었지만 이젠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마실 수 있다. 입안에 털어 넣으면 코부터 먹먹해지고 금방 아랫도리 근처까지 취기가 전해지는 안동소주가 그리워지는 봄밤이다. 벚꽃이 진다.


〈안상학·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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