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 하회마을 낙동강 강가 오막살이집에 안씨 부부가 살았다.
어느 날 지나던 중이 날이 저물어 하룻밤 자고 가기를 청한다. 찢어질 듯이 가난하여 먹을 것조차 변변치 못해 딱한 처지이었으나 마음씨 착한 안씨 내외는 스님을 거절할 수가 없어 재워주기로 허락했다.
그렇지만 먹을 것이 없다고 스님을 굶길 수는 없었다. 이들 부부는 저녁거리 때문에 온갖 궁리를 하다가 결국은 천장 갓집 옆에 매어 달아둔 명년 봄에 농사지을 피 종자를 꺼내어 저녁을 장만해 대접했다. 스님이 주인의 얼굴을 살펴보니 근심이 역력하였다. "여보! 주인장, 보아하니 걱정이라도 있는 듯 하온데 무슨 까닭이십니까?"고 물었더니 안씨는 작년 봄에 친상(親喪)을 당했지만 가난 때문에 묘자리를 구하길 없어 여태까지 아버님의 유택(묘)을 마련해 드리지 못하여 불효가 이만저만이 아니라고 하면서 고개를 떨구는 것이었다. 스님은 안씨의 착한 마음과 공손한 대접에 감동하여 그를 도와주기로 결심하고 날이 밝자 스님은 "주인장! 어젯밤 이 댁에서 베푼 은혜에 감사하여 내가 묘터 하나를 잡아 드리지요" 하면서 자기를 따라 나서라고 한다.
안씨와 스님은 하회의 동쪽 화산(花山) 근처 산중턱을 올랐다. 어느 곳을 택한 스님은 "이 자리가 명당이긴 하오만……." 하는 것이다. 사연인즉 여기에 묘(墓)를 드리면 3대 후에 정승(政丞)이 난다는 말을 했다. 너무나 어려운 가난 때문에 지친 안씨는 목구멍이 포도청이라 3대 후에 집안에서 정승이 나온다는 곳을 마다하고 스님에게 부탁하여 현실에서 부자가 될 수 있는 묘자리를 찾아달라고 하여 그곳에다가 부친의 장사를 지내고 말았다.
그 자리는 당년에 피 천 석을 거둘 수 있다는 명당이었다. 그리고 나서 안씨는 스님이 시켜준 대로 곡식 종자를 열심히 구하여 이른봄 하회의 낙동강 가에 뿌렸다. 시절이 좋아 그해 가을에 뿌린 곡식을 천석이나 수확하게 되어 그는 당년에 큰 부자가 되었다는 전설이 있다.
이로써 하회는 <허씨 터전에 안씨 문전에 류씨 배판>이란 향언(鄕言)이 생겨났고 또 오늘날까지 전해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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